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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스포츠로서의 양궁
2022.05.17

근대 스포츠로서의 양궁

자연 발생적, 원시적으로 발명되어 사용되었던 활과 화살은 전 세계적으로 걸쳐 각 민족과 지역간 특성에 따라 변형, 발전되는 변화를 겪게 되었다. 즉 풍토나, 생활환경에 따라 독특한 특징을 가진 활로 개발되면서 활의 생김새나 사용법이 다양하게 나타나게 된다.

미국의 인류학자 ‘E.S. Morse’가 유형화한 세계 각국의 사법의 유형을 살펴보면 먼저 전 대륙에서 지역의 토착민들이 사용하던 핀치형(Pinch Style - 화살을 엄지와 인지로 잡고 쏘는 방식)과 유럽이나 지중해 인근지역에서 주로 사용한 지중해형(Mediterranean Style - 인지와 중지를 이용하여 손가락으로 당기는 방식) 과 몽고계 인종들이 주로 사용하던 몽고형(Mongolian Style - 엄지와 인지의 아귀로 화살 끝을 잡고 엄지로만 당기는 방법) 등으로 구분하였다. 이후 현재까지 Archery로 불리며 국제양궁연맹(FITA, 現. WA)에서 실시하고 있는 양궁은 지중해형을 개량 발전시킨 것이다.

양궁이 스포츠로 행하여진 시기를 정확하게 추정하기란 매우 어렵다. 다만 양궁을 스포츠로 가장 먼저 행한 국가는 영국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영국은 다른 스포츠에 비해 양궁이 오랜 역사를 지니고 행해져 왔는데 “아처리 대회”가 바로 그것이다. 영국의 Henry Ⅶ세 때(1538년) 양궁은 오락용 경기로서 몇 차례 개최 되면서 전 유럽에 스포츠화가 활발하게 진행되었으며 1673년 이래 두 번의 전쟁기간을 제외하고 영국 요크셔 지방에서는 매년 양궁대회를 개최하여 승자의 이름을 기록 하였다는 것 등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따라서 일부 학자들은 스포츠 양궁의 발생지로 영국을 설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스포츠로서 양궁이 행하여진 시기는 다소간의 차이가 있을 뿐 유럽지역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행하여 졌다고 할 수 있으며 이후 각 나라의 역사적, 지역적 특성에 따른 양궁은 다양한 경기방식으로 발전하면서 국가와 국가 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스포츠로 자리잡기 위한 통합적인 국제적 경기로 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움직임이 일기 시작하였다.

양궁 경기는 1900년 제2회 파리올림픽에서 처음 개최되었으며 각국의 다양한 경기방식을 하나의 국제 대회로 통합을 시도하게 되었다. 특히 파리 올림픽은 양궁이 국제적 근대 스포츠로서의 성립을 알리고 이후 양궁이 발전하는데 교량적 역할을 수행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당시 양궁은 유럽을 중심으로 한 영국, 프랑스, 벨기에, 오스트리아, 스웨덴, 미국 등 몇몇 나라들만이 참가하는 소규모 국제대회의 성격을 면치 못하였고 1904년 미국 세인트루이스 올림픽과 1908년 영국 런던 대회, 그리고 1920년 벨기에 엔트워프 대회에서 채택된 후 중단되었고 52년 후인 1972년 제 20회 뮌헨 올림픽에서 경기방식 통합과 규정이 정립으로 재 채택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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