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가기 메뉴가기 하단메뉴가기
게시판
한국 양궁의 역사
2022.05.17

우리나라에 양궁이 도입 된 것은 1959년 당시 체육교사였던 故 석봉근 선생이 서울 중앙시장 부근 한 고물상에서 우연히 양궁을 발견하여 구입한 후 양궁의 보급을 모색하게 되면서부터이다. 이후 1962년 미군 에로트 중령이 장충단공원 석호정에서 최초로 양궁시범을 보였고, 1963년부터는 국궁대회에서 양궁경기가 시범종목으로 실시되어 본격적으로 국내에 소개되기 시작했다. <제6회 전국 활쏘기대회>는 한국 최초의 공식적인 양궁대회로 당시 대회에는 유엔군 총사령관인 “하우즈대장”을 비롯한 주한 외교 사절단이 참가하였다. 한국은 1963년 국제양궁연맹(FITA)에 정식 회원국으로 가입하여 국제 스포츠계에 공식적인 한국양궁의 출범을 알리게 되었다. 1966년에는 한국에서 최초로 양궁강습회가 열렸으며 전국 남, 여 양궁종별선수권대회가 창설되었다.

한국 양궁은 1970년대에 들어와 큰 발전의 기회를 잡게 되는데 당시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에 의한 안보 체육의 강화로 남학생은 태권도, 여학생은 양궁을 장려하여 양궁의 보급은 물론 저변확대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1974년에는 최초로 한. 일 친선 양궁경기가 열렸으며 제3회 전국소년체육대회에 양궁이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다. 특히 양궁의 소년체전 정식종목 채택으로 선수가 조기 발굴되어 우수한 국가 대표선수들이 배출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양궁이 아시안게임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1978년 제8회 방콕 아시아경기대회에 국제대회로서는 처음 출전한 한국 여자부는 한국양궁 최초 국제대회 개인 금메달(김진호)과 단체 준우승의 쾌거를 이룩했다. 이듬해 1979년 한국에 양궁이 도입 된지 20년 만에 첫 출전한 베를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여자 개인전과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였으며 60m, 50m, 30m에서도 1위를 하였다. 1979년 세계 선수권대회 재패는 한국 양궁뿐만 아니라 한국 스포츠 사상 첫 기록경기 세계 제패라는 금자탑을 이룩한 쾌거였다.

1983년에는 대한궁도협회에서 국. 양궁을 분리하여 초대 대한양궁협회장에 정몽준 회장을 선임하였고 최초로 양궁 상비군을 결성하였다. 1985년에는 제2대 대한양궁 협회장에 정몽구 회장이 취임했다. 정몽구 회장의 양궁협회장 취임은 한국 양궁의 비약적 발전과 함께 황금기를 맞이하는 계기가 된다.

정몽구 회장은 양궁의 저변확대와 우수 인재 발굴, 첨단 장비 개발을 위해 적극적인 투자와 함께 체육단체에서는 최초로 스포츠 과학화를 추진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을 높이는 등 세계화를 향한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기틀을 마련해 왔다.

아울러 양궁의 질적 수준 향상을 위하여 장비의 품질을 직접 점검하고 개발토록 독려해 세계 최고 수준의 장비를 갖추도록 하였을 뿐 아니라 품질 개발을 바탕으로 전 세계 양궁인 들이 한국산 장비를 선호하게 되는 계기를 만들어 왔다. 정 회장은 주요 경기 때 마다 선수들을 직접 만나 격려하고 포상금을 지급하는 등 양궁사랑으로 선수단의 사기진작에 큰 힘을 보탰다. 또한 취임해인 1985년 제 33회 세계양궁선수권 대회를 서울에서 개최하고 1986년 아시아양궁연맹 회장, 1993년 세계양궁연맹 부회장을 역임하며 한국 양궁의 국제화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이어 2005년에는 현 대한양궁협회 회장이신 정의선 회장이 제9대 대한양궁협회장에 취임하여 적극적인 투자와 지원으로 한국 양궁의 르네상스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정의선 회장은 취임하자마자 선수들의 맞춤형 훈련 개발 및 훈련 전산화를 통한 과학적 훈련 기법 적용과 국산 장비의 품질 개선 등 스포츠 과학화를 통한 경기력 향상을 지원했다. 또한 국내대회 활성화와 꿈나무 육성사업, 각종 양궁 발전 사업을 위해 적극적인 투자를 실시하는 한편 선진화되고 투명한 협회 운영으로 양궁발전을 위해 힘썼다.

또한 취임 첫해 아시아양궁회장에 취임하여 아시아 양궁 저개발 국가 순회지도자 파견 및 양궁 장비 지원 등 글로벌 저변 확대를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정의선 회장의 적극적인 행보는 성적으로 이어졌다. 취임 첫 해에 스페인 마드리드 세계선수권대회 전 종목 석권, 이듬해 도하 아시아경기대회 전 종목 석권은 물론, 10년 광저우 아시아 경기대회에서도 2연속 전 종목 석권을 이룩하고, 16년 리우올림픽에서는 숙원이었던 올림픽 첫 전종목 석권이라는 쾌거를 거뒀다.
이 기세는 20년(21년개최) 도쿄올림픽까지 이어서 여자 단체전 9연패라는 전무후무한 기록과 양궁 혼성팀전 원년 우승 및 양궁 최초 3관왕을 배출하는 성과로까지 이어졌다.

이는 정몽구, 정의선 회장의 대를 이은 양궁에 대한 애정과 열정, 적극적인 투자와 지원이 한국 양궁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를 보여주는 결과라 할 수 있다.

목록